melancholia
멜랑콜리아 melancholia
(2011 덴마크 영화)
감독,각본: 라스 폰 트리에
장르: 판타지,드라마
출연:
저스틴역 _ 커스틴 던스트
클레어역 _ 샬롯갱스부르
감상평
오래전에 봤던 영화인데 다시 보았다. 작년에 몇 달간 우울감으로 힘들었던 경험 이후로 이영화 생각이 종종 났었다. 예전에 봤을 때 잘 보이지 않았던 인물들의 감정 표현을 지금 본다면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척이나 아름다웠던 마지막 장면도 다시 보고 싶었다. 이전에 클레어의 심리에 더 공감했다면 이번에 보았을 때는 클레어와 저스틴의 두 인물의 심리 모두 상당히 와닿았다. 멸망과 아름다움의 아이러니한 조합에 어딘가 마지막 선물 같은 그 오묘한 느낌이 들어 좋았다고나 할까?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관객에게 괴로움은 던져주지만 회수는 안 해간다라고 악평이 많지만 관객마다 느끼는 방법은 다 다를 것이다. '멜랑콜리아'나 '살인마 잭의 집'이나 감독의 다른 영화들을 봐도 나에겐 충분한 해소를 느끼는 지점들이 명확하게 존재했다.
저스틴과 클레어, 우울과 불안
신랑 신부를 태운 흰색 리무진이 심하게 구부러진 비포장 길에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멈춰 섰다. 커브에 걸려버린 차를 빼내 보려 애쓰다 꽝 하고 돌에 박히는 리무진은 꼭 저스틴의 모습을 비유한 것 같다.
자신의 결혼식에 지각하는 신랑 신부가 여기 있다. 저스틴 언니 클레어가 저스틴을 위해 성대하게 차린 결혼식이 시작부터 비끗거린다. 늦었지만 다들 즐거운 분위기를 유지하고 결혼식을 이어 나가는데 가장 기쁜 날에도 늘 그랬듯 그녀들의 엄마는 분위기를 흐리는 말로 딸들에게 상처를 준다. 저스틴의 우울증은 분명 엄마로부터 감정적 학대가 지속되어서 발병했을 것이다. 아빠라고 다를 것도 없다. 저스틴의 우울감이 최고조로 발현되어 괴로워할 때 부모 둘 다 그녀의 곁에 있어주지 않는다. 엄마는 그녀의 우울과 결혼을 한심하게 바라보고 당장 눈앞에서 사라지라고 했으며(엄마도 만성 우울증 환자로 보여짐) 아빠는 그녀가 결혼식 동안 그토록 같이 있고 싶어 한다는 걸 알면서도 동행이 있어 먼저 간다는 쪽지 하나 달랑 남기고 제대로 된 인사도 없이 가버린다.(결국 종말이 와도 함께 하지 못하는) 직장 상사는 그녀를 위하는 척했지만 사람을 붙여 그녀를 따라다니게 해 결혼식에서까지 카피라이트 문구를 챙겨보겠다고 그녀를 괴롭힌다. 우울감을 증폭시킬 불쏘시개들이 많이 모여져서 저스틴은 끝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저지른다. 우울증 환자의 자기 파괴적 행동이었다. 당연한 수순으로 이 결혼식은 완벽히 망해버린다. 첫 장면의 리무진처럼 당연히 망할 일에 수고를 드린 것이다.
언니 클레어의 불안은 이 결혼식이 반드시 망할 것이라 알고 있었을 것이다. 사실은 저스틴이 이 결혼식을 원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고 저스틴이 자신의 기쁨이 아닌 언니가 원하는 걸 만족시키기 위해 우울감을 간신히 버티고 있는 걸 알았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주체적으로 나서서 노력하면 상황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믿은 것이다. 마치 지구 마지막날 까지도 상황을 바꿔보려고 노력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도 가족 중 저스틴을 안아주고 끝까지 곁에 있어주는 건 언니 클레어였다.
결혼식 이후로 저스틴의 상태는 더욱 나빠져 혼자서는 먹지도 씻지도 잘 걷지도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 우울증이 그렇다. 몸이 무거워지고 머리가 명해져서 마치 독한 약을 먹고 취해 있는 상태가 되어 그 어떤 긍정적인 감정은 떠올릴 수 조차 없다. 그 진창에서 빠져나오게 된다면 행운이지만 만약 그렇지 못했을 경우엔 예측할 수 없는 경로를 그리며 다가오는 '멜랑콜리아 행성'을 발견하게 되는 거다.
죽음의 곡선을 그리며 지구로 다가오고 있는 행성의 존재를 알게 된 후로 저스틴은 생기를 찾아간다. 점점 회복해서 조카의 강철이모로 돌아온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다가오는 죽음의 푸른빛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저스틴의 모습은 아름답다. 또 행성이 다가오며 나타나는 이상 자연현상도 공포가 아닌 평안으로 받아들이는 저스틴의 모습을 보며 클레어는 견딜 수 없이 불안해한다. 불안을 기반으로 한 촉이 발동하여 지구가 멸망하고 말 것이라고 본능적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불안을 통제하려고 수면제도 한통이나 사다 놓고 숨겨 놓는다.
멀어지는 듯했다가 죽음의 곡선을 타고 다시 다가온 행성으로 지구는 이제 멸망이 확정되었다. 어디로도 숨을 곳이 없다. 클레어가 마지막 순간까지 아들을 데리고 도망쳐 보려고 발악에 가까운 안간힘을 써보아도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우울증인 저스틴은 이 끝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초연한데 불안증의 클레어는 어떻게든 도망쳐서 살아남고자 강하게 저항한다. 멜랑콜리아라는 이름의 행성 즉 '죽음'이란 것을 놓고 보자면 죽음은 우울증과 더욱 밀접하다고 말할 수 있다. 우울증은 죽음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스스로 허락하는 병이다. 그래서 불안증 보다 더 위험한 병 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심한 불안증도 그 끝은 우울증과 이어져 있다. 우울과 불안 모두 다가오는 멜랑콜리아행성으로부터 피할 곳은 없다고 보면 된다. 우울증으로 자살을 선택한 사람들의 유서에 하나같이 쓰이는 말이 있다. "이제는 쉬고 싶다"라는 말이다. 저스틴은 자신이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원하는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으니 쉼과 가까워지고 있다고 느끼게 된 것이다.
반면 불안증인 클레어는 쉼과 멀어지는 고통을 받아들여야만 하니 공포가 극에 달할 수밖에 없다. 아무튼 둘 다 피할 수 없는 죽음 앞에 정면으로 마주했다.
저스틴이 만들어 준 나뭇가지로 만든 피난처가 죽음직전 유일하게 위로해 줄 공간이 된다. 그 안에서 저스틴, 클레어, 그녀의 아들은 이미 거대한 크기로 다가 온 멜랑콜리아 행성과의 충돌 직전에 와있다. 죽음에 초연한 저스틴은 행성을 등지고 앉아 언니와 조카의 손을 잡아 주었고 죽음의 의미를 아직 모를 조카는 눈을 감은 채 충돌을 맞이했다. 그러나 클레어는 이들과 잡았던 손을 놓아버리고 발버둥 치며 도망이라도 가려했던 생각인지 코앞까지 다가 온 행성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혼자서 충돌을 맞이한다.
라스 폰 트리에의 염세주의
저스틴이 불안해하는 클레어에게 지구는 사악해서 사라져도 아무도 슬퍼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죽음을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저스틴은 감독의 분신이니 감독이 관객에게 하는 말 일 텐데 사실 지구는 사악하기도 하지만 선하기도 하다. 지구가 사악해서 행성과 충돌하는 벌을 받아야 하는 건 아니다. 어떤 걸 바라볼지 선택하기에 따라 인간의 생은 달라진다. 그도 염세주의적 시선에서 벗어나 이젠 좀 선한 것을 바라보는 걸 선택하면 어떨까. 그래도 그가 염세주의에 찌들고 우울과 불안과 강박에 찌들어 만들어 내는 예술작품이 아름다운 건 매우 아이러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