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wimmers
줄거리
시리아에서 수영 국가대표까지 오른 유스라 마르디니와 사라 마르디니는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훈련하고 있다. 코치는 그녀들의 아버지였으며 올림픽 출전에 대해 열정이 가득했다. 유스라와 사라 둘 다 수영을 아주 잘했지만 동생 유스라의 재능이 더욱 뛰어났다. 사라는 일찍 동생만큼 해내기 힘들다는 걸 느꼈기에 수영에 대한 열정이 식은 상태다. 2011년 시리아에서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3월 아랍의 봄으로 불리는 민주화 운동이 시작되면서 정부와 시민과의 충돌이 이어졌고 이것이 내전으로 확산되고 외세까지 개입하여 큰 전쟁이 된 것이다. 전쟁으로 친구들이 하루아침에 죽고 미사일이 날아드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4년이라는 시간이 흘러도 전쟁은 더욱 심해져 갔다.
유스라와 사라의 아버지는 전쟁 중에도 나라의 이름을 걸고 딸들이 올림픽에 출전하기를 바랐다. 전쟁 중에도 훈련을 소홀히 하지 않고 준비시킨다. 수영 국가대표 선발전이 전쟁 상황 속에서도 열렸고 유스라가 출전하게 되었다. 사라는 전쟁이 시작되자 선수가 되는 것을 내려놓은 상태였다. 자기 나라의 현실을 직시하고자 했고 망한 나라에 국가대표가 어디 있냐며 유스라에게 수영 선수가 되는 것이 의미 없다고 말했었다. 유스라는 그래도 수영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훈련하여 선발전에 서게 되었다.
스타트 대에 선 시리아 선수들에게 출발 신호가 울렸고 유스라는 선두를 지키며 달리고 있었다. 그 순간 수영장 유리 밖으로 포탄이 날아와 폭발하는 모습이 보였고 곧이어 수영장 천장이 뚫리고 미사일이 떨어진다. 유스라가 아직 물속 안에 있는데 물속으로 떨어진 미사일은 천천히 물속에서 수영장 바닥으로 꽂히려 하고 있었다. 다행히 물속의 부력 때문에 미사일은 폭발하지 않고 그냥 바닥에 얌전히 놓이게 된다. 놀란 사라와 아버지가 물속으로 뛰어들어 유스라를 구한다. 이 일로 코치인 아버지도 시리아 안에서 수영하는 것을 포기한다. 이때 사라는 시리아를 탈출하고자 가족들에게 제안한다. 독일로 탈출한 친구의 소식에 희망을 가지고 같은 방법으로 시리아를 떠나려고 한다. 사촌 니자르가 독일에 가기로 했으니 함께 가면 될 거라고 아버지에게 허락을 받는다. 사실 니자르는 전혀 모르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Djing을 좋아하던 니자르에게 베를린의 클럽을 얘기하며 함께 가자고 제안한다. 그렇게 유스라와 사라, 니자르가 시리아를 떠날 준비를 한다. 아버지는 큰돈을 아이들에게 주며 특히 유스라에겐 그동안 수영으로 땄던 금메달들을 주며 사람들에게 조국을 위해 수영했다고 말하면 너를 다르게 볼 것이라고 격려한다. 아버지가 준비해 준 루트로 떠날 준비를 하는 셋. 터키 이스탄불 까지 관광비자로 비행기를 타고 그곳에서 준비된 브로커를 만나 그리스로 가기로 한 것이다. 도착하면 가족 재상봉 신청을 할 희망을 가지고 셋은 비행기에 오른다. 다행히 이스탄불 까지는 어려움 없이 도착하게 된다. 그 이후 일정이 꼬이며 현장에서 브로커를 만나 돈을 건네어주고 다음 일정을 무한정 기다리게 된다. 길어진 기다림 동안 같은 처지의 각국의 사람들을 만나며 서로 유대감도 키워간다. 이른 새벽 브로커가 도착했다. 그들이 들고 온 것 고무보트였다. 모터가 달려 있는 작은 보트였다. 이 작은 보트에 20명 이상의 사람이 타야 한다. 몇 명의 사람들은 탈출을 포기하고 남은 사람들은 배에 오른다. 시동도 제대로 안 걸리는 모터를 가지고 와서 태우는 것이 그들이 바다에서 죽든 말든 책임지지 않는 것 같았다. 난민들을 사지에 몰아넣고서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던 브로커의 얼굴이 소름 돋았다. 보트는 그리스로 가는 방향을 향했지만 그리스까지 절대 도착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른다. 사람들의 무게 때문에 보트 안으로 물이 차고 있었다. 사람들이 가지고 온 짐들을 바다에 버리고 유스라는 아버지가 챙겨준 금메달도 바닷속으로 보낸다. 그러나 곧 모터의 시동도 꺼지고 말았다. 엔지니어였던 니자르가 모터를 고쳐 보려 하지만 소용없었다. 이때 유스라와 사라는 엄청난 결정을 한다. 수영을 해서 배를 끌고 그리스 까지 가기로 한 것이다. 죽음을 무릅쓰고 유스라와 사라는 물속으로 뛰어든다. 줄을 배에 묶어서 수영해 나간다. 두 사람이 빠지자 모터에 다시 시동이 걸렸고 속도를 내서 그리스까지 수영하여 도착한다. 빠진 사람 없이 모두 그리스의 해변에 도착했다. 해변에는 무수히 많은 난민들의 흔적이 쌓여 있었다. 그들도 그곳을 지나 마을로 들어가게 된다. 마을 사람들의 탐탁지 않은 시선을 느끼면서도 살아있다는 것 하나에 안도한다. 난민들은 버스를 타고 밤새 달려 아이발리크에 도착하게 된다. 이곳에서 새로운 브로커를 만나지만 사기꾼이었다. 어딘 지도 모를 곳에 난민을 버려두고 도망간다. 난민들은 걸어서 국경까지 가게 되었다. 또다시 브로커를 만나 인당 1000유로란 큰돈을 주고 국경을 넘게 된다. 유스라는 사라와 떨어질 뻔하기도 하고 브로커 일단 중 한 명에게 나쁜 일을 당할 뻔 하지만 위기를 넘기고 국경을 또 한 번 넘어 베를린으로 가는 난민지원 단체의 버스를 무사히 오르게 된다. 오랜 시간을 달려 베를린에 도착했음을 알리자 난민들을 기쁨으로 환호한다. 모두 죽음의 위기는 넘긴 것이다. 유스라와 사라, 니자르는 난민 캠프에 함께 지내게 된다. 난민캠프에서 두 달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유스라는 당장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하기로 한다. 운동을 다시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무작정 독일의 한 수영 팀 코치를 찾아가 자신을 이 수영클럽의 일원으로 출전시켜 달라고 말한다. 황당해하는 코치에게 자신의 자유형과 접영의 뛰어난 기록을 알려준다. 접영 100미터가 1분 09 초라니 엄청난 속도였다.
유스라는 코치 스벤과 함께 아버지와 자신이 그렇게 간절히 목표로 했던 리우 올림픽 출전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유스라는 훈련을 강하게 몰아붙여서 올림픽 출전에 가능한 기록을 달성한다. 그러나 유스라는 시리아 대표로 출전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으로 결성되는 난민 팀 대표로 나가게 된 것이 아쉬웠다. 유스라가 연습에 매진하는 동안 사라는 조금 방황한다. 그리고 가족 재상봉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 일로 유스라와 다툰다. 가족들이 자신이 겪은 것을 그대로 겪을 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다툼 이후로 사라도 마음을 다잡고 동생의 매니저가 돼 주기로 한다. 두 자매가 합심하여 올림픽 출전까지 열심히 달린다. 리우 올림픽이 열렸고 유스라는 브라질에 도착하여 일정을 수행한다. 다른 국가 수영선수들의 난민팀에 대한 조롱 때문에 침울 해져 있는데 사라가 도착해서 다시 힘을 얻는다. 드디어 경기가 열렸다! 유스라는 바다와 죽음과 싸워 이겨낸 수영인 이었다. 그렇게 유스라는 리우 올림픽에서 난민 팀 대표로 당당히 금메달을 획득한다.
유스라 마르디니와 사라 마르디니는 배를 타고 망망대해에서 탈출 당시 자신들이 수영 선수인 것을 계속 떠올렸다고 한다. 수영을 해서 배를 끌고 가며 정말 배고프고 목이 말랐지만 배에 타고 있던 아이들이 더 걱정되었다고 한다.
리우 올림픽 이후 두 주인공의 근황
이후 그들은 가족들 과도 만났고 이전과는 다른 목표를 가지고 행동한다.
언니 사라는 레스보스로 돌아가 날마다 해안에 도착하는 난민들을 돕는다. 그리고 베를린에서 대학교에 들어가 학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유스라는 유엔난민기구의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역시 난민들을 돕는다. 유스라는 유엔난민기구와의 인터뷰를 통해 "모든 난민을 대표해 고통과 폭풍의 시기가 지나면 평온한 날들이 찾아온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난민들에게 살아가면서 좋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영감을 주고 싶다"라고 전했다. 또 전쟁이 끝나면 시리아로 돌아가 배웠던 모든 것들을 가르치고 싶다고 했다. 꼭 그날이 찾아오길 기도한다.
사라 마르디니는 난민은 세계 시민이며 모두가 출신에 상관없이 안전하게 살 권리와 꿈을 가질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믿는다고 말한다. 그런데 사라는 5년 전 난민을 돕다가 그리스의 감옥에 갇혔다가 나오게 되었으나 현재까지도 재판이 남아 있다고 한다. 중범죄로 재판 결과가 나올 경우 중형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여러 불법 적인 죄목으로 재판이 열리게 되었는데 사라 마르디니는 난민을 돕는 일을 불법화하기 위한 것이 저들의 목표라고 비판하였다.
리우 올림픽에서 난민 선수팀의 의미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는 난민 문제에 대한 인식을 증가시키고 세계적인 관심을 끌기 위해 2016년 리우 올림픽에 난민팀을 처음으로 결성했다. 이 결정은 전 세계적인 난민 위기에 대한 의식을 높이고, 난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 자국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도망친, 난민 신분을 가진 선수들에게 참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그들의 열정과 능력을 세계에 보여줌으로써 난민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여 이해와 관심을 촉진하였다.
2011년 이후 시리아인 570만 명이 난민이 됐다고 한다. 그중의 절반이 18세 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