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영화 아무르 Amour 사랑 그 자체인 영화

by hi tortue 2024. 2. 22.

AMOUR

안느


영화 기본정보


감독: 미카일 하네케
장르:드라마, 로맨스
상영시간:127분
출연: 장루이 트랭티낭, 엠마뉘엘 리바, 이자벨 위페르

수상:2012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수상
 
영화는 고령의 부부가 죽음에 직면하면서 그들의 평범했던 삶이 어떻게 변화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이 영화를 보고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 마음 한구석에 오랫동안 머물렀던 기억이 있다. 여전히 영화의 결말에 대해 끔찍하다 아니면 아름답다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눈물이 멈추지 않을 정도로 느꼈던 슬픔의 감정은 명료했다.
 


어느 날 찾아온 불행


주인공 조르쥬와 안느는 은퇴한 피아니스트로 지금은 음악을 가르치며 노후의 일생을 잔잔하게 보내고 있다. 긴 시간 서로를 사랑하고 의지해 오던 부부의 삶에 어느 날 불행이 찾아온다. 안느가 중풍을 앓게 된 것이다. 그녀는 중풍을 앓게 되며 삶의 일상적인 활동을 수행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진다. 수술 이후 거동의 불편을 넘어 정신과 언어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안느는 이전의 빛을 잃어간다. 더 이상 아름다웠던 여인, 예술가가 아니다. 신체 대부분의 기능의 심한 저하로 인간의 존엄마저 사그라지는 모습이 되어갔다. 조르쥬에게 안느는 조르쥬 자신과도 같은 존재다 누구보다 그녀를 잘 알고 있으며 비록 그녀의 지적 능력의 스위치가 꺼졌어도 그녀라면 어떤 것을 원했을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렇게 그녀를 돌보고 도와주려 노력하지만 점차 어두워져 가는 현실은 너무나 가혹했다. 딸에게는 엄마를 끝까지 돌볼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지만 끔찍한 악몽을 꾸며 괴로워하는 조르쥬였다.
 


안느에게 있어 병의 의미


피아니스트였던 안느에게 중풍이란 병은 큰 충격을 주었다. 음악가로서의 정체성과 자아를 내려놓게 될 수밖에 없으니 그녀가 느낀 좌절감은 상당히 깊었을 것이다. 신체적 증상을 넘어 그녀가 싸워야 할 것은 사라져 가는 정체성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무력감이었다. 자신의 예술적 업적이 서서히 사라져 가는 것을 목격하면서 소외감과 슬픔도 느꼈을 것이다. 이 얼마나 가혹한 일인가, 아내의 삶이 신체적 정신적으로 서서히 소멸해 가는 것을 지켜보는 조르쥬의 고통도 상당했을 것이다. 함께 이뤄낸 것들과 일궈낸 삶이 무너져 가는 것은 조르쥬의 삶이 무너져가는 것과도 같았다. 안느는 자존심이 절대로 허락하지 않았기에 요양병원으로 보내지는 것을 끝까지 거부한다. 조르쥬는 아내의 바람이 어떤 의미인지 남편으로서 음악가로서 너무 잘 알기에 딸의 부탁에도 안느를 요양병원으로 보내지 않고 자신이 끝까지 보살피겠다고 결단한다.

 


약해져 가는 조르쥬

사랑하는 아내를 지키려 하지만 조르쥬의 건강도 점점 악화되어 가고 있었다. 인생의 끝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아는 조르쥬는 안느와 함께하는 이 세상의 삶 마지막을 그의 방식으로 준비한다. 누군가는 조르쥬의 행동이 끔찍하다고 할 수도, 아니면 사랑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죽음'이 자유로워지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조르쥬에게 있어 안느가 어떤 의미인지 이 애절한 사랑이 무엇인지 알기에 조르쥬의 감정과 행동을 이해하며 공감한다.

 


영화의 메시지


하네케 감독은 종종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고립과 부조리를 다루는데 아무르에서도 두 노부부의 삶과 죽음을 통해 이러한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영화의 초반 부부가 제자의 연주회에 갔을 때 카메라는 연주자를 비추지 않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를 때 까지도 꽉 찬 관객석만 비춘다. 연주를 마치는 순간에도 카메라는 여전히 관객을 비추고 있으며 오히려 관객이 손뼉 치는 장면만 보여준다. 장면의 의미는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라면 예외 없이 겪게 될 죽음이란 것을 관망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관객석에 조르쥬와 안느가 그랬듯 말이다.
그리고 영화의 시작에서 경찰들이 부부의 집을 열고 들어갈 때 코를 막는 걸 보면 죽은 지 오래되어 부패가 진행되었다는 건데 부부의 생활 흔적에 대한 경찰들의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이웃이 없다. 우편물이 9일이나 수거되지 않고 쌓여 있었는데도 말이다. 누구 하나 관심 가져주지 않던 닫힌 문 안에서 안느와 조르쥬의 마지막 시간에 대한 아픔이 상상되어 눈물이 났다. 누군가 도움의 손길을 제대로 내밀었다면 조르쥬는 안느를 더 편히 보내줬을 것이고 그도 삶을 하나씩 정돈 해가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가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 이러한 선택은 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령화 문제를 다룬 영화에 대해 요즘 들어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최근 개봉한 영화 '플랜 75'도 그렇고 노인의 삶을 다룬 영화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부모님의 연세가 들어가면서 새삼 느끼는 것 일수도 있지만 최근 고령화가 시작된 듯한 사회적 현상과 분위기가 직접적으로 느껴져서 인 것도 있다. 주변에 요양병원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사회는 아직 준비가 덜 된 것 같은데 일은 이미 벌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인간 혼자서 노화를 버텨내는 게 가능할까? 어떤 방식으로 든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인간은 예외 없이 누구나 노화 이후 죽음까지의 과정을 겪는다.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폐쇄적인 사회를 지양하고 열린 사회를 지향해야 하는 것이다. 점점 서로 간의 교류가 줄고 폐쇄적인 사회가 되어가는 것 같아 걱정이 된다. 내가 늙었을 때 곁에 누구 하나 없다면... 이런 생각을 하면 조금 두렵다.

 


하네케 감독의 주목할 만한 연출


하네케 감독은 사실적이고 현실적 연출을 하면서도 심미적 연출을 상당히 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무르에서의 카메라 워크나 구도, 조명등을 상당히 섬세하게 사용했음을 느낄 수 있다. 감독은 종종 정적인 카메라를 사용하여 장면 연출을 한다.(특히 영화 초반의 안느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는 부분 등) 관객에게 중요한 장면이나 감정을 집중시키는 힘이 있다. 가까운 거리에서의 촬영도 이러한 점을 더욱 강조해 준다.
단순한 구도와 조명을 사용하고 복잡한 카메라 효과나 장식보다는 간결하고 단순하게 장면을 연출해 나가면서 장면의 감정을 강조한다. 굉장히 현실 적 장면을 연출하면서도 감정적 극대화를 끌어낸다.

 


기억에 남는 비둘기 장면과 앤딩


조르쥬는 집 안으로 들어오던 비둘기를 잡아서 밖으로 놔주고 싶었지만 실패했었다. 하지만 안느를 보내고서는 비둘기가 순순히 그의 손에 잡혀준다. 조르쥬는 담요로 감싸 잡은 비둘기를 안고 쓰다듬는다. 자신의 집에 두 번이나 들어온 비둘기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것인지 안느가 비둘기가 되어 찾아와 주었다고 생각 한 건지 애처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는 안느에게 비둘기를 창밖으로 날려 보내주었다고 편지에 쓰고 잠이 든다. 비둘기가 자유로워진 안느와 조르쥬를 의미한다는 걸 안다. 인기척에 잠에서 깬 조르쥬가 평범한 어느 날 아침처럼 안느를 다시 보게 된다. 그리고 둘은 함께 외출을 한다. 둘은 어디로 가게 되었을까? 죽음으로 죽음과 맞서 싸운 조르쥬와 안느가 평온함에 이르렀기를 바란다. 조르쥬와 안느의 삶 마지막까지 지켜본 우리는 이것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