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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랑은 낙엽을 타고, 헬싱키 로맨틱코메디

by hi tortue 2024. 1. 11.

영화 포스터
새롭게 회자될 로코의 탄생이다.


기본정보


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

장르: 로맨틱 코미디
주연: 알마 포이스티(안사 역)
        주시 바타넨 (홀라파 역)



유머, 안사와홀라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 humour
핀란드 배경이면서도 묘하게 러시아나 느낌도 나는 게 추운 나라 사람들 이야기라 그런가? 일단 대부분의 등장인물의 표정이 아주 무뚝뚝 그 자체이다. 표정 변화 거의 없이 목소리도 크지 않고 조곤조곤한데 중간중간 실없는 유머가 많아 웃게 된다. 초반부는 안사가 너무 외로움에 찌들어 보여서 걱정되고 홀라파는 술에 찌들고 막사는 사람이라 걱정되고.. '이 영화.. 그다지 유쾌하지 않으려나?' 싶었는데 계속적으로 조곤조곤 웃겨주는 대사 때문에 우려와는 다르게 매우 유쾌했다. 관객들 이랑 같은 포인트에 함께 웃은 게 얼마 만인지 즐겁고 따뜻했다.
 
* 안사 and 홀라파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노동자 계급에 대한 묘사는 감독이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이 어떠한지 짐작할 수 있다.
타인에 대한 냉담함 그리고 그것이 자신보다 사회적으로 낮은 지위에 있을수록 더욱 뚜렷해지는 그런 행태에 대한 비판과 조롱이 영화 내내 스며있다. 하지만 우리 안사와 훌라파 그리고 평범한 시민이자 약자 친구들은 주눅 들지 않는다. 계급의 횡포에 굴하지 않는다. 알코올 중독이건 지독한 외로움으로 매일이 즐겁진 않아도 굴복은 없다. 어딘가 지독히 찌들어 보여도 유쾌하다. 직장에서 잘린 홀라파가 위로의 선물이랍시고 받은 북유럽 식 유머집의 분위기와 일맥상통하다.
아무튼 안사도 홀라파도 그리고 그들의 친구들의 삶은 말 그대로 각자도생이다. 어디에도 그들이 안정을 찾을 곳은 없다.
안사의 쓸쓸한 퇴근길 장면과 홀라파가 우울의 쳇바퀴 때문에 술에 절어 있는 장면에서 삶의 고단함이 진하게 느껴진다.
우리도 다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밤에 혼자서 쓸쓸히 집으로 걸어 들어가며 간혹 느끼던 나의 하루에 고단함과 고독이 떠올랐다. 누가 좀 내 하루를 알아주길 바라던 그 외롭던 마음이 생각나서 짠하기도 했다.
이 둘의 삶 이 정도면 완벽하게 바닥 친 거다 싶을 때 그들의 사랑이 출발선에 놓인다. '짚신도 짝이 있다' 이게 시작되는 것이었다! 최악의 상황일 때 시작되는 사랑이라니 사람일은 알다가도 모른다. 부러웠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만 예전에 누군가에게 사랑받으려면 모든 조건이 준비되어야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안사랑 홀라파 둘이 썸을 타는 걸 보면서 저 사람들 이제 어쩌려고 저리지? 연애할 돈은 있나? 이런 계산적 생각을 하면서 예전의 내 생각들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아직도 좀 그런 생각을 하고 사는 것 같다. 축적된 편견의 때가 빠지려면 멀었나 보다. 아무튼 저 두 사람은 위기 속에서도 자신들의 감정이 이끄는 길로 당당하게 걸어간다.
 
* 러시아 and 우크라이나
안사와 홀라파가 라디오를 켤 때마다 나오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뉴스는 세상은 저렇게 사람을 가차 없이 죽여버릴 정도로 잔인할 수 있다고 계속해서 외친다. 핀란드 안에서의 삶도 호락호락하지 않지만 바깥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더욱 가차 없구나 싶다. 전쟁이라니!
전쟁뉴스가 안사와 홀라파의 어긋나는 타이밍을 비유했다고 다른 후기들에서 말하기는 하는데 그것보단 감독이 그냥 아주 작은 소시민인 그 둘이 어떻게 이따위 세상을 이겨 나가는지 봐줄래?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감독이 저 둘의 만남을 해피앤딩으로 그릴 것이라 예상했다. 그리고 주소를 적어준 쪽지를 잃어버리는 장면은 타이밍이 안 맞아서 답답하다가 아니라 오히려 그 둘의 만남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켰고 아주 귀엽게 심어놓은 장치라고 느꼈다. 카우리스마키 감독 외모도 그렇고 거칠고 차가워 보이지만 (사람들이 짐자무쉬 닮았다고) 귀여운 거 엄청나게 좋아하고 조용히 웃기는 거 좋아하고 음악에 대해서는 수준 높은 감성을 가지고 있으며 무엇보다 무척이나 따뜻한 심장을 가진 사람인 것 같았다. 홀라파가 열차에 치일 때도 죽지 않았을걸 알았다. 영화에서 여자의 꺅하는 비명 때문에 아.. 홀라파가 막살다가 결국 저렇게 죽었나 보다.라고 생각할 만도 한데 말이다.



헬싱키 로맨틱코미디


둘은 많은 장애물을 넘고 결국 사랑을 꽉 잡는다. 서로가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는 존재라는 걸 알지만 둘은 그런 것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저 순간을 함께 하고 사랑하기로 마음먹었다. 저 둘의 세상이 강해 보였다. 맞다. 부러웠다. 나도 누군가와 함께 세상이 만든 규격과 잣대들을 이겨낸 사람들의 무리에 속하고 싶어졌다. 그런 희망을 몽글몽글 가져보면서 이 로맨틱코미디의 묘미를 완벽하게 만끽했다.

 


여담

 

* 유기견 역할의 귀염둥이는 감독의 강아지고 제법 경력 배우라고 한다. 안사와 홀라파 그리고 강아지라 3배 따뜻해 보였다.
* OST 향신료 소녀들의 '슬픔에서 태어나 실망을 갖춰 입고'를 꼭 들어 보길 추천합니다. 가사가 예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