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 물
지난 주말에 영화괴물을 보러 갔다.
개봉 날짜는 작년(23년) 11월 29일이니까 꽤나 시간이 지난 시점이다.
다들 꼭 보라고 해서 흥미는 생겼지만 영화에 대한 그 어떤 정보도 찾아보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인지 감독이 의도한 대로 극 초반의 불편감과 마지막 즈음에서의 그 해소감을 제대로 느끼게 되었다.
아직 안 보신 분들이 있다면 백지상태로 영화를 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보고 나서 감독의 영화 해석을 듣는 것이 더욱 재밌습니다.
인간의 마음이란 게 있는가?
영화는 3막의 구조로 되어있다. 막간의 전환을 명확히 표시하지는 않으나 크게 인물별 관점으로 구성했다.
크게 처음은 미나토의 엄마 사오리 중간은 호리 선생님 마지막은 미나토와 요리의 관점으로 나뉜다.
인물들의 관점으로 풀어낸 방식이 이영화의 핵심이라 할 수 있겠다.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본다. 영화의 인물들도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만 본다. 보고 싶은 대로만 보다가 거기서 수많은 거짓들이 탄생한다. 또 상처와 비극이 자라기도 한다. 영화에서는 다행히 그 실타래가 풀어지긴 했지만 실제 세상엔 이로 인한 수많은 비극이 있다. 최근에 GD의 마약루머나 편견과 부풀려진 시선의 독 속에서 죽어간 배우 설리의 생이 그러하다.
3막 구성
1막
걸스바가 있는 고층 건물에 불이 났다. 소년 미나토와 그의 엄마는 창문을 열고 대수롭지 않게 불구경을 한다.
찰나에 미나토는 어떤 질문들을 하지만 엄마는 큰 불에만 온 관심이 가있다. 간혹 우리는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 정작 중요한 것들은 놓칠 때가 많지 않은가? 건물에 난 불은 잘 보여도 내 가족 내 사랑하는 사람들 마음에 일어난 불씨는 못 보고 만다. 그날 이후로 미나토는 이상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머리칼을 자르고 귀가 찢어져서 돌아오거나 집을 나가 동굴에서 발견되거나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리는 등 미나토의 이해하기 힘든 행동들이 불안감과 긴장감을 최고조에 이르게 한다.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렸다가 다쳐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미나토는 또 한 번 발작(?)을 하는데 이로 인해 엄마는 아들이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확신을 해버린다. 미나토는 엄마에게 호리선생님 때문이라고 말해버린다.
아이들은 코너에 몰리면 끝장날 거짓말쟁이가 된다. 나도 그랬었던 기억이 있다.
화가 난 엄마는 학교에 찾아가서 사과를 받아내려 하지만 선생들 반응이 이상하다. 눈빛이 죽어있었다. 사과할 마음이 전혀 없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적어도 이때까지는 그렇게 보였다.
사오리는 포기하지 않고 결국 호리 선생을 공개적으로 단상에 세워 미나토에 대한 괴롭힘을 사과하도록 만드는 데 성공한다. 여기까지가 1막 엄마 사오리의 시선이다.
2막
이제 중심인물은 호리 선생님으로 바뀐다. 앞 장면에서 호리의 모습을 보고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완벽하게 다른 모습이라 놀라게 될 거다. 1막에서의 모습은 교육에는 관심도 없는 어딘가 외톨이 예비 범죄좌 같은 느낌이었는데 대반전이었다.
호리의 여자친구마저 장난이지만 어딘가 소름 돋는다고 놀리는 걸 보면 오해를 부르는 캐릭터 인가보다. 신문이나 잡지등에서 오타를 찾아내 알리는 그의 취미도 creepy 하다며 놀림을 당한다. 호리 선생님의 진짜 모습은 아이들을 많이 사랑하고 아이들에게 오히려 쩔쩔맨다. 사건에 휘말리게 된 건 그저 우연히 사건이 일어난 그 장소에 있었기 때문일 뿐이다. 호리 선생님이 당하는 억울한 일들로 관객은 화남의 2단계로 접어들고 이제 사건의 중심인 아이들이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요즘 초등학생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우리는 잘 아니까.
주인공인 두 아이들에 대해서 말을 해보겠다. 먼저 둘 다 엄청난 귀여움의 소유자이다. 그 둘이 무대인사 하는 영상이 인스타그램 쇼츠등으로 종종 올라와서 봤었는데 너무 사랑스러웠다. 영화에서는 그보다 더 귀엽다. 각오하시길! 특히 요리 역의 히이라기 히니타는 말랑콩떡 아기 고양이 그 자체다. 아직 변성기 전이라 소년과 소녀의 구분이 어려운 모습이 너무 귀엽다. 두 아이들과 일본 시골 여름의 청량함과의 조합 이 모습 자체만으로 미장센이 되어준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관객은 호리 선생의 의심대로 요리를 괴롭히는 거 같다거나 가방에서 휴대용 토치를 엄마에게 들키는 등 어딘가 불량할 것 같은 분위기의 미나토가 이 잘못 돌아가는 사건의 중심에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미나토의 엄마도 호리선생의 주장에 따라 아들이 어딘가 의심스러워지고서야 요리란 아이의 존재에 대해 궁금해 하기 시작한다. 아들이 호리 선생님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동시에 요리를 괴롭히고 있다고 의심한다. 물론 관객도 그렇게 의심하며 극을 추리하기 시작한다. 추리극은 아닌데 추리하게 만드는 묘한 영화다.
2막에서의 호리 선생님은 오해로 인해 지독한 함정에 빠지게 되었고 그로 인해 벼랑 끝으로 몰리게 된다. 자신을 이렇게 까지 만드는 미나토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때쯤에는 미나토가 아주 영악하고 사이코패스의 씨앗을 지닌 아이로 보이게 된다. 호리 선생님이 벼랑으로 몰리는 모습이 참 안타까웠다. 이런 일들이 종종 일어나는 걸 우리는 많이 보았다. 호리의 시선에서의 장면이 전환될 즈음이나 돼서야 그가 사건의 키를 발견한다. 숙제로 내준 요리의 장래희망에 적힌 오타가 사건이 풀리는 열쇠가 되어준 것이다. 그래서 어른은 아이의 사소한 듯 보이는 엉뚱한 말과 행동을 주의 깊게 봐야 하는 것이다.
호리의 동료 선생이 교장선생이 당한 비극에 대한 추측을 진실인 것처럼 아니, 재밌는 이슈인 거 마냥 가볍게 뱉어내는 장면이 기억난다. 사실 아이들의 행동의 진실이 풀리는데 중요한 키는 아니지만 감독이 계속해서 비판하고 했던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아주 잠깐 등장하지만 극 중에서 가장 별로인 인물로 느껴졌다. 호리가 당하는 고통의 이유를 관통하는 장면이었다.
아직 아이인 미나토가 두려워하던 것도 이렇게 참을 수 없이 가벼운 타인의 말과 시선에 상처 입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거짓말을 했고 그로 인해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게 돼버린 것이다. 사실 미나토가 순수하지만 잔인하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호리 선생님이 자신의 속을 알아주지 못해서, 눈치채지 못해서 벌을 받아도 상관없다 이런 생각 까지는 아니었어도 선생님이 어떻게 되던지 모른 척 한 점은 매우 잔인했다.
감독은 이런 일련의 일들이 인재라고 표현했다. 극 초반의 화재와 태풍보다 더 잔인한 건 진실은 버려 버리고 가벼운 말들만 취하는 행태의 인재인 것이다.
3막
드디어 아이들의 관점에서의 장면인데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미나토의 관점에서의 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감독은 일부러 요리의 시선에서는 장면을 연출하지 않고 거의 미나토의 시선으로 장면이 진행된다고 했다. 요리는 존재하게만 두었다고 한다. 요리가 이 영화에서 가장 거짓되지 않은 기준의 상징이라 그렇게 둔 것 같았다.
둘만의 아지트 장면에서 순수한 아이들 모습이 어찌나 마음을 간지럽히는지.. 그리고 둘의 우정이 얼마나 소중한지 앞 장면에서의 지친 마음을 조금 위로받게 되었다. 버려진 열차에서의 미장센이 너무 환상적으로 아름답다.
자신의 진짜 모습을 버리라고 학대당해도 씩씩하게 스스로를 놓아버리지 않는 여리지만 강한 요리에게 미나토는 우정인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낀다. 요리라는 한 인간 존재의 깊이를 알아보고 스며든 모습 일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아이들은 그들만의 세상으로 도망간다. 둘이서만 구축한 그 순수의 세계로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새로 태어나기로 하고 둘만의 이벤트를 연다.
미나토는 타인의 시선을 경계하고 두려워했으나 오히려 태풍이 불어 비바람이 불고 산사태로 들리는 무서운 소리 따위에는 겁먹지 않았다. 두 아이는 어른들의 걱정과는 다르게 알아서 잘 영리하게 위기에서 빠져나온다. 빠져나왔을 때는 태풍이 이제 지나갔고 해가 쨍하게 비치고 있었다. 요리가 미나토에게 " 우리 다시 태어난 건가?" 하고 물어보지만 미나토는 어딘지 단단해진 모습으로 "아니 그대로야 똑같아"라고 말한다. "달라지지 않아도 그대로여도 괜찮아"라고 말하듯이 말이다.
세상은 아직 괜찮다고 하지 않겠지만 아이들은 '우리는 태풍도 견뎌낸걸?' 하고 자신감이 넘쳐나는 것 같았다.
마지막 장면의 들판씬에서 감독은 크게 소리 낼 수 있는 대로 내도 좋다고 아이들에게 요구했다고 한다.
들판을 달리며 소리 지르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긴장이 모두 해소되었지만 한편에 남은 걱정은 '어른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교장 선생
어쩌면 4막이 될 뻔도 했을 여교장 선생님의 관점에 대해 짧게 말해보겠다. 교장은 굉장히 선과 악이 모호한 인물로 보인다. 그녀도 아이들과 같던 순수한 시절이 있었겠지만 '진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라는 현실이 굴러가는 원리에 체념한 어른 인간이 되어버렸다.
사건들을 바로잡을 기회가 여러 번 그녀에게 주어졌지만 한사코 다 외면해 버린다. 그래도 그녀에게 하나 숨통이 트이는 순간이 있었다면 미나토가 사실은 호리 선생이 괴롭히지 않았고 다 내 거짓말이다라는 고백을 누구보다 먼저 들었을 때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어릴 적 미나토와 요리같이 순수했을 때 자신이 한껏 사랑했던 악기를 떠올린 것 같았다.
미나토와 요리의 버려진 열차의 공간처럼 그 악기들은 그녀에게 그런 공간의 의미였을 것이다.
미나토에게 트럼펫을 불도록 도와주며 자신의 비밀도 푸~하고 뱃고동 비슷한 소리에 실어 보낸다. 멀리 바다로 아픔을 보내 버린다. 아마도 그 소리가 뛰어내리려던 호리 선생님에게도 가서 닿았다 싶었다. 다행이었다.